▲ 호암미술관 '루이즈 부르주아: 덧없고 영원한(Louise Bourgeois: The Evanescent and the Eternal)' 전시 전경.


현대미술의 거장 루이즈 부르주아의 삶 속에 반복된 사랑과 두려움, 갈등의 기억과 트라우마는 70여 년에 달하는 그의 예술 세계를 온전히 점령했다. 어린 소녀 시절부터 마치 통과의례를 거치듯 남성과 여성, 과거와 현재, 무의식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끝없이 오간 그의 정체성과 감정은 어딘가 거칠고 날카로운 작품 속에 온전히 녹아들어 깊은 사색에 잠기게 한다.
지난달 30일부터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루이즈 부르주아: 덧없고 영원한(Louise Bourgeois: The Evanescent3D테마주
and the Eternal)'는 194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는 그의 전 생애에 걸친 작업 여정을 총망라한 국내 최대 규모의 미술관 회고전이다.
회화, 조각, 설치 등 106점의 작품이 소개되며,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웅크린 거미(Maman)'를 비롯해 삼성문화재단 소장품 13점과 해외 주요 기관 및 개인 소장품 등이 포함됐다.저평가우량주추천


부르주아가 생전에 쓴 글에서 차용한 전시 제목 '덧없고 영원한'은 그가 평생 탐구해 온 내면 심리를 반영한다.




▲ 호암미술관 '루이즈 부르주아: 덧없고 영원한(Louise Bourgeois: The Evanesce카프로실적발표
nt and the Eternal)' 전시 전경.





▲ 호암미술관 '루이즈 부르주아: 덧없고 영원한(Louise Bourgeois: The Evanescent and the Eternal)'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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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서사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부모와의 관계와 그로부터 비롯한 기억과 감정은 두려움과 불안, 갈등으로 점철되며 작가의 '현재'의 경험과도 충돌한다. 그는 자신을 양육하고 보호했지만, 경쟁과 질투의 대상이 됐던 어머니와 강렬한 욕망의 초점이자 성적 혼란의 근원이었던 아버지 가운데서 심리적 균열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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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예술 언어 속에서 추상과 구상, 내부와 외부, 수직과 수평 같은 대립적 요소가 나타나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연상시키는 단단하거나 부드러운 재료의 사용이 교차하는 것도 이러한 상반된 심리에 기인한다.

전시 역시 '의식과 무의식'의 이중 구조로 연출된다. 의식을 상징하는 1층은 밝은 공간으로 연출해 이성과 질서의 세계를 드러내며 선형적 내러티브로 전개한다. 반면 2층은 무의식을 상징하는 어두운 공간으로 연출해 우울과 질투, 공격성 같은 주제에 따라 다양한 동선으로 관람할 수 있도록 연출하지만, 절대적 구분은 지양하며 숨을 고를 수 있는 여백을 주기도 한다.




▲호암미술관 '루이즈 부르주아: 덧없고 영원한(Louise Bourgeois: The Evanescent and the Eternal)' 전시 전경.


명확히 구분된 듯 그렇지 않은 작가의 내면처럼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전시 공간을 따라가다 보면, 가부장적인 아버지에 대한 상상적 복수를 무대로 연출한 설치작품 '아버지의 파괴'를 비롯해, 남성과 여성의 형상을 결합한 청동 조각 '개화하는 야누스'(1968), '밀실' 연작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꼽히는 '붉은 방(부모)'(1994), 우울과 성적 긴장을 응축한 '밀실(검은 날들)' 등을 마주할 수 있다. 한 때 심각한 우울증을 겪으며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정신분석을 받은 작가의 기록들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꿈에 대한 기록, 작업 노트, 흩어진 텍스트은 물론, 특히 그가 생애 전반에 걸쳐 쓴 글들과 정신분석 기록을 번역본과 함께 배치해 각 공간의 주제에 더욱 집중하도록 한다.

또, 부르주아의 작품 세계를 폭넓게 경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부르주아 연구와 해석에 중요한 목소리를 내온 프랜시스 모리스 전 테이트 모던 관장의 특별 강연과 작품 해설 토크, 글쓰기 워크숍 등이 이어질 예정이다.




▲ 호암미술관 '루이즈 부르주아: 덧없고 영원한(Louise Bourgeois: The Evanescent and the Eternal)' 전시 전경.


신체, 기억, 트라우마를 주제로 한 자전적 경험과 복잡한 내면 심리를 조형 언어로 선보이며 깊은 감정의 층위를 다룬 루이즈 부르주아의 전시는 내년 1월 4일까지 열린다.
/글·사진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