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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배터리 인증제와 스마트제어 충전기 보급, 지하주차장 소방설비 강화 등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사고 2년이 지난 지금도 기존 공동주택에 적용할 현실적인 안전 기준은 미흡하다. 그사이 전기차는 100만대를 넘어섰고 충전기는 50만기에 육박했다. 조선비즈는 청라 화재 2년을 맞아 현장의 변화와 정부 대책의 성과, 검증된 화재 대응 기술과 해외 사례를 통해 전기차 시대 공동주택에 필요한 안전 기준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지난 5일 인천 서해구 청라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벽에 부착된 전기차 완속 충전기 옆에는 소화기와 질식소화포, 고체 에어로졸 소화장치가 놓여 있었다. 충전시설은 외기에 접한 공간에 모아 배치됐다. 2년 전 이곳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의 흔적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2024년 8월 지하주차장에 세워진 전기차에서 시작된 불은 주변 차량과 주차장 설비로 번졌다. 차량 959대가 타거나 그을렸고 주민 23명이 연기를 마셨다. 단전과 단수까지 겹치면서 주민들은 집을 떠나 임시 거처에서 생활해야 했다.
화재를 겪은 아파트는 지하주차장을 복구하면서 충전구역을 다시 조성하고 대응 장비를 보강했다. 지상에 차량이 다니지 않는 구조여서 충전시설은 지금도 지하에 있다. 한국부동산원 K-apt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 단지에는 벽에 부착하는 완속 충전기 116기가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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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은 일상을 되찾았지만 전기차 화재를 둘러싼 문제까지 복구된 것은 아니다. 대형 사고를 직접 겪은 청라 아파트와 달리 전국의 기존 아파트는 어떤 장비를 설치할지, 충전구역을 옮길지,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를 주민들이 정해야 한다. 청라 화재 이후 신축 건축물의 소방 기준은 강화됐지만 기존 아파트에 적용할 최소 안전 기준은 여전히 뚜렷하지 않다.
◇ 신축은 소방 기준 강화…공동주택 86%는 2020년 이전 준공
정부는 청라 화재 이후 배터리 인증제와 배터리 정보 공개 제도를 도입하고, 충전율을 제어할 수 있는 스마트제어 충전기 보급을 확대했다. 지하주차장에서 불이 났을 때 초기 확산을 막기 위한 소방설비 기준도 손질했다.
올해 3월 1일부터 시행된 화재안전성능기준에 따라 새 기준이 적용되는 건축물의 지하주차장에는 원칙적으로 습식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한다. 배관에 물이 차 있어 화재가 발생하면 곧바로 작동하는 방식이다. 전기차 충전구역에는 불에 빠르게 반응하는 조기반응형 스프링클러 헤드를 방호 반경 2.1m 이내로 설치하도록 했다.
그러나 강화된 기준은 이미 지어진 건축물에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조선비즈가 K-apt에 등록된 공동주택의 준공 연도를 분석한 결과, 86.1%인 1만8660개 단지가 2020년 이전에 준공됐다. 기존 공동주택 대부분이 새 기준을 적용받지 않을 뿐 아니라, 노후화로 시설 보강에 드는 부담도 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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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지하주차장의 스프링클러 배관을 습식으로 바꾸거나 설비를 전면 보강하려면 큰 비용이 든다. 지상에 주차 공간이 없는 단지는 충전시설을 밖으로 옮기기도 어렵다. 질식소화포와 상방향 직수장치, 열화상카메라, 고체 에어로졸 소화장치 등이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설치 환경과 사용 방식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
그래픽=정서희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전기차 화재 대응 장비 설치비의 50~70%를 지원하고 있다. 지원 한도는 지역과 단지 규모에 따라 수백만원에서 5000만원까지 차이가 난다. 지원금을 받아도 자부담이 남는다. 장기수선충당금 등을 쓰려면 입주자대표회의 의결과 주민 동의가 필요해 장비의 효과나 비용을 놓고 이견이 생기면 설치가 무산되기도 한다.
정부 대책이 신축 아파트에는 의무 기준을 만들었지만 기존 아파트에는 일부 비용을 지원하는 데 머문 것이다. 어떤 장비를 갖춰야 하는지, 최소한 어느 정도의 성능을 확보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일된 기준도 없다.
◇ 전기차 109만대…정부가 남긴 판단은 주민 갈등으로
안전 기준의 공백이 이어지는 동안 전기차는 빠르게 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국내 전기차 누적 등록 대수는 109만5218대다. 올해 상반기 국내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가 차지한 비율은 23.3%이고, 전국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는 약 50만기에 달한다.
등록 대수가 늘면서 화재 건수도 늘었다. 소방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기차 화재는 73건으로 지난해 연간 발생 건수 98건의 74%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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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전기차 화재로 발생한 재산 피해액은 약 123억원이다.
명확한 기준이 없다 보니 일부 아파트는 지하 충전구역을 폐쇄하거나 충전기를 지상으로 옮기고 있다. 최근 경남 김해의 한 아파트에서는 전기차 충전시설을 지상으로 이전하는 안건이 입주자대표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지상에 주차 공간이 없는 아파트는 충전시설을 옮길 곳이 마땅치 않다.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40대 A씨는 “지하주차장이 3층까지 있는데 충전시설이 가장 아래층에 몰려 있다”며 “화재가 걱정돼 가능하면 지하 1층에 주차한다”고 말했다.
전기차 차주들은 안전 대책이 주차 차별로 변질된다고 호소한다. 전기차를 보유한 40대 B씨는 “전기차를 지하주차장에 세우는 것이 불법도 아닌데 화재 위험을 이유로 차를 빼라고 한다”며 “내연기관차에도 화재 위험이 있는데 전기차만 막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현행 공동주택관리법령에는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이용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규정이 없다. 반대로 화재를 우려하는 주민들의 요구를 조정할 명확한 기준도 없다. 정부가 기존 아파트의 안전설비와 비용 분담 원칙을 정하지 않은 채 판단을 단지별로 넘기면서 화재 안전 문제가 주민 간 주차 갈등으로 번진 것이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청라 아파트는 큰 피해를 겪은 뒤 충전구역을 재조성하고 대응 장비를 보강했지만, 사고를 겪지 않은 전국의 기존 아파트에 같은 수준의 조치를 요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정부가 기존 아파트에 필요한 최소 안전설비와 장비 성능, 비용 분담 원칙을 마련하지 않으면 전기차 화재 대책은 계속 단지별 판단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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